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매니 라미레즈 (문단 편집) ===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 [[파일:external/www.boston.com/manny-ramirez-gallery-850x478.jpg|width=700]] 2000년 12월, 8년간 1억 6000만달러라는 거액으로 매니 라미레즈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FA계약했고 입단 회견에서 "[[뉴욕 양키스]]의 독주에는 질렸다."라는 말을 남기며 타도 양키스를 밝힌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매니는 드래프트 참가 당시 1순위 픽을 갖고 있었던 [[뉴욕 양키스]]의 지명을 내심 기대했지만 양키스가 자신을 거르자 이 때부터 양키스를 싫어하게 됐다고 한다. 참고로 그 때 양키스가 1순위로 지명한 좌완 투수 브라이언 테일러는 1992년 BA 선정 유망주 1위에 오르는 활약을 하기도 했지만 1993년 12월에 자기 형제와 주먹다짐을 하다 부상을 당하는 황당한 일을 겪고 나서는 1994 시즌을 통째로 날리고 이후 마이너에 복귀하긴 했지만 탈탈 털리는 배팅볼 투수가 되어 메이저 무대는 밟지도 못하고 은퇴하게 된다.] 타격 능력에 비해 부족한 수비력[* 우익수 출신이었기 때문에 어깨는 강했다. 하지만 집중력이 많이 부족해 항상 큰 실수를 하였다.]으로 인해 라미레즈는 레드삭스의 좌익수로 활약했으며 스프링캠프에서는 크게 부진하며 먹튀가 되나 하는 우려를 받았지만 이적 첫해부터 곧장 41홈런과 125타점을 기록한 라미레즈는 2번째 시즌에는 타율 0.349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타율 1위를 차지한다. 2003년부터는 [[데이비드 오티즈]]와 공포의 중심타선을 형성했고 2004년에는 지긋지긋한 밤비노의 저주를 깨면서 월드시리즈 MVP를 받는 등의 큰 역할을 한다. 비록, 수비에서는 약점을 많이 노출했지만[* 그래서 입단 초기에는 지명타자로 많이 뛰었지만 [[데이비드 오티즈]]가 온 이후로는 어쩔 수 없이 좌익수로 붙박이 출장을 해야 했다.] 그것을 커버해주고도 훨씬 남는 타격 능력이 있었고, 특히 라미레즈는 포스트 시즌에서 더욱 더 강력한 타자가 되었다. 보스턴에서 보여준 활약, 더욱이 보스턴이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데 매우 큰 기여를 한 선수라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이적 이후 보스턴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였다. 매니 라미레즈는 레드삭스에서 8년간 있으면서 타율 0.312, 출루율 0.411, 장타율 0.588, 274홈런, 868타점을 기록했고 6번의 실버 슬러거 수상과 8번의 올스타전 출장을 기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